<목회칼럼> “십자가의 길, Via Dolorosa”
<시사한겨례 2022년4월14일자>
2018년 2월 14일,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햇살은 밝았고 하늘은 푸르고 화창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대중교통수단인 트램(경전철)을 탔다. 예루살렘성 북문(다마스커스 문)앞에서 내려 예루살렘 성안으로 걸어갔다. 길은 이미 순례객으로 붐볐고, 길 옆에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가이드를 따라 도착한 장소는 빌라도의 법정. 예수님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선고받은
그 장소였다. ‘비아 돌로로사(슬픔의 길)’의 출발점이었다.
‘비아 돌로로사’는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약 800m의 길이다.
예수님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해 걸으셨던 그 길이다. 그 길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순례자들의 신앙적인 길로 14세기에 확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아 돌로로사’
걷기는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다. 이스라엘을 떠나기 하루 전날인 이날은 원래 휴식일이었다.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돌아보는 여정이 빡빡해 다들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휴식일에
‘비아 돌로로사’를 걷자는 가이드의 제안에 우리 일행은 모두 찬성했다.
이번 예루살렘 방문에서 가장 경험하고 싶었던
‘십자가의 길, 비아 돌로로사’ 걷기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빌라도의 법정을 나와, 로마시대에 조성된 돌바닥길 위로 걸음을 재촉했다.
채찍에 맞고 조롱당하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출발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심정은 먹먹했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던 제 5지점부터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시장통이 된 낮으막한 계단을 오르며,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졌다.
길이 험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에 매달리기 위해 그 길을 걸어올라가신 예수님의 힘겨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길은 골고다 언덕, 지금은 성묘교회가 서있는
곳에서 끝났다. 그곳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서 운명하신 곳이다. 그날 고통의 극한을 겪으며, 고독의 극한을 겪으며, 관계단절의
극한을 겪으며 생명을 내려놓으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라 한동안 그곳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이천년전 세상은 복음에 적대적이었다. 그것을 가장 철저하게 보여준 사건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다.
그 고통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내 영혼을 아버지에게 맡깁니다”라고 믿음으로
순종했으며, 이후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다.
지금부터 500여년전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라고
선언했다. 그의 ‘십자가 신학’은 예수께서 고통가운데 매달리신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셨슴을 강조하며,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해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고통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려는 자들을 일컫어 ‘영광의 신학자’라고 비판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고난을 외면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는 자들이 있다면,
루터가 비판했던 ‘영광의 신학자’와 다를바없는 사람이다.
“No Cross, No Crown”.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 있었기에, 부활소식이 구원의 복음이 되었다. 고난주간을 지나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따라서 마음으로 그 길을 걸으며,
회개와 감사로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